胎券道와 孫子兵法 2부 - 벤처인이 된 손자

 

여러분하고 같이 손자병법을 토파(공부)하고 있는 “청호태권도장의 신성환 관장”입니다. 1부 “손자의 재벌해체론”에 이어 2부 “벤처인이 된 손자”에 대해 각론합니다.

 

‘손자는 벤처로 갔다는 겁니다. 벤처라는 거, 벤처라고 하는 것은 모험적인 즉 불확실성이 농후한 말 그대로 모험적인 기업이란 것입니다. 안정된 직장인 대기업보다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이 큰 요즘으로 말하면 중소기업에 손자는 자기의 인생을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냐를 각론하기 전에 손자에 대한 개인적인 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손자가 정확하게 어느 시대, 몇 년에 태어나서 몇 년에 죽었다는 손자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보편적으로 손자에 대해서 살펴보려면 ‘사마천’이 쓴 ‘사기’라는 책을 참고합니다. 사기에 보면 손자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가 기록돼 있습니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손자는 제나라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제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감이 안 오실 겁니다. 중국 지도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산동성이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산동성이란 곳은 인천에서 배을 타고 가면 산동성 청도라고 하는 곳으로 갑니다.

 

바닷가인 산동성 청도에서 쭉 내륙으로 들어가다 보면 임치라는 곳이 있습니다. 옛날에 여기가 바로 ‘제나라’라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와 아주 가까운 지역에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제나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중국을 크게 강을 통해서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으로 나누는데  북부 지역의 제나라를 타고 지나가는 강을 황하강이라고 부르고 상해 지역을 지나는 강을 양자강(장강)이라고 부릅니다.

 

황하강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하면 그 당시(춘추전국시대)에 중국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은 황하강 유역의 나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손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따져보는 상황에서 제나라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관점(사항)입니다.

 

제나라라면 황하를 끼고 있는 나라로 요즘으로 보면 굉장히 문명국가(발전한)입니다. 중원에 속해(가까운)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 제나라 출신 손자라고 하는 병사 이론가가 제나라에서 출세할 수도 있었는데 제나라가 아닌 황하유역의 송나라, 주나라(낙양), 한나라, 위나라 등 중원의 황하 문명권(중원문화권)에서 얼마든지 자신이 갖고 있는 병법 이론을 갖고 충분히 출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자는 강력한 중원문화권의 나라(강대국)가 아닌 남쪽 양자강 유역의 중원보다 낙후한 지역에 있는 오나라라고 하는 곳에 가서 주로 활동을 합니다.

 

결국 손자가 선택했던 나라는 오나라였던 것입니다. 오나라는 지금의 상해(上海)라고 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합니다. 상해에서 벌어들인 경제력이 중국을 먹여 살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상해 사람하고 북경 사람이 만나면 서로 갈등을 합니다.

 

상해 사람들은 북경 사람들한테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힘 좀 있다고 우리가 돈 벌어서 먹여 살리는데 어깨 힘만 들어가 있다고 하고, 북경 사람들은 상해 사람을 보면 저놈들 돈 좀 벌었다고 입에다 금이빨 하고 다니는 꼴 좀 보라고 서로 간에 비아냥거립니다.

 

우리나라도 지역 간의 감정이 심하지만 중국은 우리나라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지역 간의 감정(갈등)이 심합니다. 중국의 지역간 감정(갈등)은 황하와 양자강(장강)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됩니다. 황하를 중심으로 하는 황하권 지역 사람과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양자권 지역 사람들이 서로 간에 반목을 하는 것입니다.

 

 

중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이라는 나라의 문명권은 황하권 유역의 문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중국으로 치면 하남성, 하북성, 산동성, 산서성, 산시성 등 5개성 정도의 지역을 문명국(강대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업으로 치면 대기업에 해당하는 지역들인 것입니다. 문명 뿌리도 있고 사회가 발전한 시간도 오래되므로 그 동안 발전한 다양한 문명(사회규범)도 잘 형성돼있는 그야말로 문명국(대기업), 잘사는 나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손자는 이곳을 놔두고 이상하게 저 변방의 아주 낙후된 나라인 오나라로 간것입니다. 기업으로 치면 중소기업 중에서도 이제 막 기술을 축적하고 있는 그런 신생기업으로 간 것입니다.

 

지금이야 상해 지역이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이 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굉장히 낙후된 지역이었고 낙후된 지역이기에 문명이 발전한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낙후된 지역에 있는 오나라는 문명이 아직 덜 갖춰진(성숙한) 개발도상국에 불과한데 손자는 중원 문화권의 문명국(강대국)인 제나라에 태어나서 얼마든지 중원의 문명국(강대국)에서 자기의 역량을 펼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자가 평생 활동했던 지역은 오나라입니다.

 

오나라! 여러분 같으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손자의 그런 결정이 올바른 결정이었는지, 여러분들 혹시 자녀분들한테 자녀분들이 학교(대학) 졸업하고 나서 취직을 할 때 대부분 어디를 선호하나요? 벤처기업하고 대기업 중에서 어디를 선호해요? 대부분 대기업을 선호하지 않습니까? 대기업에 가야 평생 안정된 직장으로 보장 받을 수 있으므로 모두들 대 기업을 선호하지 않습니까?

 

대부분은 대기업을 선호했을 겁니다. 그런데 손자는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고 오나라로 갑니다. 오나라는 합려(闔閭)라고 하는 왕이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합려 왕한테 간 손자는 자기가 쓴 새로운 시대를 위한 병법 이론서 13편을 바칩니다.

 

그리고는 나를 당신 나라의 참모총장으로 임명해 주면 내가 신흥 개발도상국이라 할 수 있는 이 오나라를 중원의 여러 강대국들과 같은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지금 커가는(중흥하는) 이 오나라를 위해 많은 공헌을 할 수 있다고 합려에게 제안(써달라고)을 합니다. 그런 손자의 제안에 오나라 왕 합려가 제안을 받아들여 손자와 합려가 역사적인 만남을 이룹니다.

 

손자가 합려를 만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손자라고 하는 사람이 오나라에 가서 오나라 왕 합려와 서로 의기투합 해 오나라가 이후 강대국인 초나라도 점령하게 되고 북쪽으로는 진나라, 제나라까지 위협을 하면서 오나라를 강대국으로 부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일조)을 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안정된 대기업이 아니라 신흥기업인 벤처로 간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생각을 하세요? 만약 우리나라 육군 참모총장을 외국인인 미국인을 초빙해서 임명을 한다면 여러분들은 수긍(인정)하시겠습니까? 우리나라 군 통제권을 쥔 육군 참모총장을 외국인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아마도 인정 안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회를 보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니라 어느 은행장을 외국 사람을 임명한적이 있었습니다. 요즘 기업에서 고위 임원과 이사들을 뽑을 때 외국인들을 많이 초빙을 하는 추세입니다. 자기 지역이 아닌 배타적이지 않은 다른 지역 사람들을 자기 영역의 최고 경영자로 맞이한다는 건 그만큼 사회가 열린사회라는 것입니다. 닫쳐진(폐쇄적) 사회에선 상상도 못할 상황입니다.

 

자기들끼리 해먹어야지 왜 우리가 할 수 있는 자리에 다른 사람들이 오고 그 사람들에게 자리를 주느냐는 것입니다. 보통은 거부를 하는데 오나라(합려)는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오나라라고 하는 나라는 상당히 열린사회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오나라는 나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오나라 귀족들의 열린 사고(마음)가 손자로 하여금 오나라로 가는 원초적인 이유를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반인들이야 군 참모총장에 외국인(제나라 사람)을 쓰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못하겠지만 그 나라의 지배계층에 있는 귀족들은 충분히 문제를 제기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귀족들이 자기나라 사람이 아닌 제나라의 손자라는 사람이 자기 나라의 참모총장으로 영입되는 것에 대해서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 드렸다는 것은 오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열린사회(개방적)였고, 특히 지배계층(귀족)들이 깨어있는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런 면이 손자가 오나라를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손자가 오나라를 선택하는 이유(과정)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좀더 세부적인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손자병법이라는 책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손자병법은 실제로 없다. 그것은(손자병법) 모두 다 거짓 즉 위서란 것입니다. 내용 모두가 조작된 것으로 후대에 어떤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짜깁기해서 써놓은 위서란 것입니다.

 

지금부터 2,500년 전에 齊나라라고 하는 나라에 손자라는 사람이 쓴 병법 책을 오나라 왕 합려에게 바치고, 오나라의 참모총장이 되고 하는 일이 다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데 그 손자병법에 대한 위작설이 한순간에 깨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1972년(4월)에 산동성 임기현의 은작산에 있는 전한시대의 한 고분에서 손자(빈)병법의 죽간이 발견됩니다.

 

임기현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거기에 있는 한 나라 때 왕의 무덤에서 손자병법이 발견이 된 것입니다. BC 150년에서 180년경 이때가 한 나라 초기에 해당됩니다. 결국은 1972년에 산동성 임기현에서 발견된 한 나라 초기의 고분에서 발견된 손자병법으로 인해 그동안 의심해왔던 손자병법 위작이라는 말이 싹 들어간 것입니다.

 

결론하자면 孫子兵法은 여러 고고학적 발굴과 그 내용에 의해서 춘추 말기에 제나라 출신 손자라고 하는 사람이 오나라라고 하는 변방국가에 가서 자신의 병법이론을 오나라 왕(합려)에게 바친 병법 연구보고서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 된 것입니다.

 

아울러 손자의 고향에 관해서도 짚어봐야 하는데 손자는 과연 제나라 어디에서 태어났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춘향이 태어난 곳이 어디죠? 남원에선 남원이라고 하고 딴 지역에선 우리 지역이라 하잖습니까? 홍길동이 태어난 곳(본거지)도 지역마다 우리 지역이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태어난 곳이 자기들 지역이라고 하는 것은 왜 일까요? 결국은 그게 다 돈과 연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문화 상품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람을 자기네 고장(지역) 사람이라고 하고 관련 문화상품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지방자치가 되면서부터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손자의 고향도 중국에서는 서로간 자기 지역이라고 설왕설래(說往說來) 난리가 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산동성 어느 지역이라고 정확하지 않으니까요.

 

손자의 고양에 대해서 낙안 사람들은 낙안이라고 하고 옛날 제나라의 수도였던 임치현 사람들은 임치가 손자의 고향이라고 중국 역시도 손자를 자신들 지역 사람이라고 손자 동상을 세우고 유적지를 치장하는 등 치열한 손자 끌어들이기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손자가 정확히 태어난 곳이 어디라고 말하기가 좀 힘듭니다. 지금까지의 각론을 정리 해 보면 우리가 지금 각론(공부)하고 있는 손자병법 총 13편은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춘추 말기의 작품으로서 제나라라고 하는 중원의 문명국가 출신인 29살의 엘리트 군사철학자인 손자라는 사람이 얼마든지 중원의 문명국(강대국)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해지역 지금은 중국의 부의 중심지역이지만 과거에는 변방지역인 오나라라는 곳에 객경(외국인 경영자)으로 가서 자기 인생을 겁니다.

 

그리고는 약 7년여에 걸쳐서 오나라 왕 합려와 같은 객경 위치에 있는 ‘오자서’라는 사람과 같이 손자 셋이 의기투합해 오나라를 저 변방 미개한(문명이 발달하지 않은)국가에서 중원의 문명국(강대국)과 겨룰 수 있는 강대국으로 발전을 시켜 초나라라고 하는 강대국도 물리치는 위업을 달성합니다.

 

손자와 관련하여 하나 더 살펴봐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손자가 왜 남쪽으로 갔냐는 것입니다. 즉 안정된 대기업이 아니라 불안정한 벤처(중소기업)로 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손자가 오나라로 간 이유 중 첫째는 적어도 손자가 황하강 유역의 나라들 즉 대기업에 가면은 결국은 자기의 모든 기량을 발휘하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란 것입니다.

 

중원의 강대국으로 가면 이미 그 나라는 안정된 나라(강대국)인 관계로 나름의 명분이 있고 그 명분 속에서 사사건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숱한 제재가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 나라에 가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군사적 비젼(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오나라라고 하는 나라의 열린사회분위기 즉 개방성입니다. 앞에서도 부연했지만 외국인도 얼마든지 영입할 수 있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작용한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는 오나라가 중원의 다른 국가들처럼 안정된 국가가 아니라 새롭게 등장하는 신흥 국가였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래돼 안정된 강대국이면 그런 게 불가능했을 텐데 개국된 지 얼마 안 돼서 안정이 안된 관계로 문화라든지 인재를 모으는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손자라는 사람이 오나라에 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이 돼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손자가 선택한 오나라 행 즉 중원의 문명국(강대국)보다는 신흥 변방국인 오나라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앞에서 질문했을 때 여러분들은 대부분 대기업을 선택하신다고 그랬는데 지금 다시 한번 질문하면 자녀분들 이 커서 취직할 때 대기업으로 가라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벤처로 가라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단순하게 말할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손자병법이라는 책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다시 토파(공부)하고 있지만 이 시대(현재)에 분명한 새로운 메시지 전달을 충분히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손자 개인이 그 당시에 선택했던 그 결정이 결국은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중요한 어떤 판단 근거로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측면(생각)에서 필자는 각론을 펴는 것입니다.

 

오나라 왕 합려와 손자의 대면을 주선한 사람이 오자서라는 사람으로 오자서 역시 초나라 사람이었습니다. 초나라 사람인데 객경으로 오나라에 와서 벼슬을 하고 있던 사람입니다. 초나라 사람인데 이 사람도 역시 오나라로 왔고 또 손자라고 하는 사람은 제 나라 사람인데 역시 오나라로 왔습니다. 그만큼 오나라가 개방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나라의 오자서가 손자를 오나라 왕 합려에게 천거를 한 것입니다.

 

오나라로 간 손자는 오나라 왕 합려를 만납니다. 처음 만나는(대면) 장면에 대해 아주 인상적으로 사마천이 쓴 사기에 손자, 오자 열전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오자서가 손자를 합려에게 천거하므로 첫 번째 인터뷰가 시작이 되는데 그 인터뷰(첫대면) 장면이 사기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부연 설명하면 신하를 대면하는 편전에 오나라 왕 합려가 정면에 앉아 있고 손자라고 하는 제나라의 29살의 청년군사 이론가가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오나라 왕이 있는 궁전에 외국에서 젊은이가 중요한 군사 CEO로 영입되기 위해 온다고 하니 당연히 문무백관 대신들이 모였을 것이고 오나라 왕 합려 주변에 있는 궁녀들 또한 구경을 하고자 쭉 서있었습니다. 합려는 궁녀를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첫 번째로 오나라 왕이 하는 말! 당신이 쓴 손자병법 13권은 내가 이미 읽어보았소 라고 합니다. 이 말은 손자병법을 미리 읽어봤다는 것입니다. 그대가 그렇게 귀신같이 군대를 운용하고 군대 조직을 잘한다고 하니 내 앞에서 그대가 ‘군대(병사)를 운용하는 방법을 한번 시험해 볼 수(보여줄)수 있소’ 라고 합니다.

 

합려가 손자에게 군대 운용에 관한 시범을 보여 달라고 하는 요구에 손자는 합려의 요구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 합려에게 지금 이곳에 있는 궁녀들 180명만 차출해 달라고 합니다.

 

여기에 있는 궁녀들을 이 자리에서 바로 훈련을 한번 시켜보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합려는 그게 가능할까? 나한테 총애를 받는 궁녀들이 무슨 전쟁을 해봤다고 당장 이 자리에서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냐고 반문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손자는 궁녀 백팔십 명을 일단 달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궁녀 180명을 A부대와 B부대로 나눕니다. 그리고는 각부대별로 왕(합려)이 제일 총애하는 궁녀를 각 부대 총대장으로 임명을 합니다. 그리고는 명령을 전달합니다.

 

너희 둘은 이제부터 A부대와 B부대의 총대장으로 임명한다. 군대는 조직과 명령 체계를 따르는 집단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에게 명령을 내릴 텐데 이 명령을 그대로 잘 수행하기 바란다.

 

내리는 명령은 너희들 가슴을 한번 보라. 가슴 그리고 등도 한번 보고 왼손 오른손도 한번 봐라. 이제부터 앞으로 하면 자기 가슴을 쳐다보고, 뒤로 하면은 등을 쳐다보고, 우로 하면 오른손을 쳐다보고, 좌로 하면 왼손을 쳐다봐라. 모두 알겠느냐? 라고 하니까(명령을 하니까)

 

궁녀들이 그 명령이란 것을 진지하게 받아드리겠어요. 그냥 한번 해보는 거라고 생각해 알았어요라고 하며 다들 웃고 난리가 납니다. 그러자 손자가 반색을 하며 웃지 말라고 다시 명령을 합니다.

 

너희들은 지금 군대조직의 일원인 군인인데 어떻게 군인이 명령을 받으면서 웃을 수 있느냐? 다시 한번 명령을 내리겠다고 하면서 명령을 다시 합니다. 앞으로 하니까 모든 궁녀들이 앞으로래 앞으로 하면서 웃고 난리가 또 났습니다. 뒤로 하니까 역시 똑 같았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상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장면)을 보고는 합려도 저거 뭐 저래가지 무슨 훈련을 시킬 수 있겠나! 라고 하며 주시하고 있는데 손자가 장군기(부대기) 옆에 있는 도끼를 들고 이게 장군의 상징인 도끼다. 이 도끼를 들고서 다시 명령을 하는데 이번에도 명령이 수행(듣지)되지 않으면 이 도끼로 가만 안 놔둔다고 하고는 또 명령을 합니다.

 

그래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하니까 또 웃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궁녀들이 뭐 그 얘기를 듣겠습니까? 그러자 손자가 엄숙하게 명령을 다시 내립니다. 명령을 한 번 전달해서 안 듣는 건 각 부대원의 책임이 크지만 두 번이나 반복을 했는데도 부대원들이 안 듣는 것은 부대장들의 책임이 더 큰 것이다.

 

각 부대장 2명은 앞으로 나와라. 그리고 부대장 두 명 목을 장군(부대)의 상징인 도끼로 쳐 버리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러자 그걸 보고 있던 궁녀들은 이게 뭐냐고 다들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오나라 왕 합려도 또 옆에 있던 오자서도 아이고 이 사람아! 왜 그러나? 이거 그냥 한 번 해보는 거라고 말리며 왕이 전령을 보냅니다.

 

나는 저 두 여인이 없으면 밥을 먹어도 밥 먹은 거 같지 않고 좋은 걸 봐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제발 둘을 살려주라고 전령을 보냅니다. 그때 손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왕께서 저에게 병권을 주셨으면 그 병권을 위임하였으면 야전(전쟁터)에 나가 있는 장군에게 모든 책임을 주신 것으로 그 병권을 받은 제가 군대를 운용하기 위해 내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병권을 주신 이상 저한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면서 두 여인을 그 자리에서 목을 쳐버립니다. 그리고는 다시 오나라 왕 합려가 사랑하는 여인 2명을 다시 부대장으로 임명을 합니다.

 

이제 너희들이 부대장이다. 다시 한번 명령을 전달하겠다하며 똑 같은 명령을 합니다. 앞으로 하니까 그냥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난리를 치던 것이 몇 년 동안 훈련을 받은 군사들처럼 일사분란하게 궁녀들이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합려는 아무리 전술도 좋고 전쟁을 위한 군대 조직도 좋지만 내 사랑하는 여인 둘이 죽었기 때문에 나는 널(손자)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하고는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갑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끝났으면 손자병법이 아마도 지금까지 남아(전해지지)있지 않았을 거고  손자에 대해서 필자가 이렇게 토파(각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합려가 상심하고 자리를 떠날 때 오자서가 달려가서 왕(합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야만인 같은 아직 발전이 덜 된 이 오나라를 정말 새로운 신흥국가로 발전시켜 중원의 강대국들과 견줄 수 있는 위대한(강대국) 나라로 만들려면 총애하는 여인 둘 죽었다고 저 사람을 멀리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그냥 궁녀들하고 여기 촌구석에서 사는 수밖에 없다고 직언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거든요. 합려가 마음을 바꿔 그래 좋다 내 궁녀를 다 잃어버린 한이 있더라도 다시 한번 만나보겠다고 해서 손무(자)라고 하는 29살의 젊은이를 오나라의 최고 군사 요즘으로 치면 최고 참모총장으로 영입을 합니다.

 

참고로 합려가 총애 하던 궁녀들은 모두 무기 만드는 공장으로 보내 버립니다. 결국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뚫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오나라 왕 합려와 손자라고 하는 젊은이와 또 초나라에서 망명한 오자서 그리고 그 당시 오나라의 귀족들의 사회적 분위기 등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손자가 오나라를 발전시키는데 아주 큰 기여(일조)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당시와 같은(손자 시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서 과연 아무런 거부감 없이 외국의 인재들을 우리나라로 불러 모으는데 거부감이 없는지, 또 새로운 마인드로 이 시대의 문제점들을 개혁 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지, 특히 태권도계 기득권 세력(핵심임원)들은 이 손자병법을 통해서 변화를 꾀해야 더 나은 미래로 나갈 수 있습니다.

 

참고로 손자가 태어난 제나라에 대해서 좀 토파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나라에 대한 성격(이해) 규명이 없이는 손자라고 하는 사람이 자란 환경에 대해서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중국 지도를 보면 거대한 중국 대륙은 황하강과 양자강이 있습니다.

 

황하강 북쪽을 하북성이라 하고 황하강의 남쪽을 하남성이라 하며 태행산의 동쪽을 산동성이라 합니다. 그러고 서쪽은 산서성이라고 부릅니다. 또 섬서성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나라라고 하는 나라는 어떻게 보면 제일 동쪽 끝, 우리로 보면 서쪽이지만 중국 황하 문명권에서 보면 제일 동쪽 끝에 있는 나라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닷가 지역에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주나라 무왕이 처음으로 제나라를 여러분들이 잘 아는 강태공이라는 사람한데 줍(봉건제후)니다. 은나라를 극복하고 주나라를 건국하는 무왕이 강태공을 만나 주나라를 건국(세우고)하고 제나라 제후에 봉하는 상황을 잠시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극복하고 주나라를 건국하기 위해서 절치부심하고 있을 때 산동성 출신인 강태공을 만납니다. 그 일화는 다들 알고 있듯이 강태공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50이 넘도록 벼슬도 못하고 집에서 글만 읽던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글만 읽으니 부인에게 홀대를 당합니다. 결국은 집에서 매일 글만 읽고 돈을 벌어 올 생각 안 한다고 부인에게 차입니다. 요즘말로 이혼을 당합니다. 그때 강태공은 사람(부인)이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인데라고 하며 위수(渭水)라고 하는 강가로 나가서 매일같이 낚시를 하는데 낚시 바늘이 없는 빈 낚시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주나라 건국 왕인 무왕이 그 위수를 지나다가 웬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까 낚시를 하는데 고기를 잡으려는 게 아니라 그냥 빈 낚시를 하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무왕이 강태공에게 당신 여기서 뭐 하고 있냐고 하며 왜? 낚시를 하는데 고기 잡을 생각을 안 하냐냐고 물으니 강태공이 하는 말이 ‘나는 고기를 잡으려는 게 아니라 세월을 낚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왕이 어허! 나를 만나려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냐고 하면서 서로 의기투합해 주나라를 세우고 강태공은 그 대가로 제나라 제후로 봉해집니다. 제나라로 제후로 봉(부임)해져 부임하는 길에서 자신을 차버린 부인을 만납니다. 새로운 왕이 온다는 말에 사람들이 나와서 보고 있는데 거기에 옛날 강태공을 차버린 부인도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 부인이 자세히 보니 매일 공부만 하던 자기 남편인거에요. 여보! 나 모르겠어요? 라고 하니 강태공이 병사한테 물 좀 갖고 오라고 하고는 갖고 온 물을 부인 앞에 엎어버립니다. 그러면서 이 물을 다시 집어 담을 수 있으면 내가 당신과 다시 결혼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글을 읽고 세상을 움직일 것을 구상할 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지라고 부인에게 말을 하고는 길을 갑니다. 없질러 진 물이란 것입니다.

 

강태공이 제나라 제후로 봉해졌는데 제나라는 중원 문화권 중에서도 제일 동쪽에 떨어져 있는 나라입니다. 중원 문화권이었지만 바닷가 지역으로 어떻게 보면 제일 변방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바닷가라는 것은 새로운 문화가 계속 들어오고 나가는 교차지역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원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특히 이 산동성 제나라는 외부와의 교류가 빈번하고 교류가 빈번하다 보니까 늘 새로운 사고(思考)가 열려있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다른 나라보다는 명분은 뭐랄까 좀 덜(부족)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변화된 새로운 사회 환경을 만드는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제나라의 사회적 환경에서 자란 손자의 사고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나라의 특성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말이 적당할 것입니다. 제나라 제상을 지낸 관중이 한 말 “창름실이지예절”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명분도 좋고 밖에 나가서 인사하고 예절 이런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채워져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배가 채워져 있어야 예절도 나오는 것이란 것입니다. 관중의 이 말은 정말로 현실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말입니다.

 

제나라가 크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의 이러한 현실주의 정책들과 그 뒤를 이은 안영 등 열린 사고를 가진 지도자들의 통치 이념이 명분 보다는 실리와 현실에 기초하는 나라로 강태공으로 부터 시작돼 이어져 오면서 황하권 지역에 있는 나라 중에서 가장 명분에 떨어져 있었지만 실리주의와 합리주의 또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분위기)을 지닌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환경(풍토)에서 성장한 대대로 장군 집안의 후손인 손자라고 하는 사람이 황하 문명권에 있는 큰 나라들을 선택하지 않고 상해 지역 지금의 양자강 남쪽에 있는 오나라라고 하는 신흥 개발도상국에 가서 자기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그야말로 자기의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만들기 위해 손자가 선택한 벤처 행위야말로 우리에게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필자는 합니다.

 

손자라는 사람이 쓴 손자병법 책은 춘추 말기와 전국시기를 거치는 중요한 시기에 새로운 시대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환경에 맞는 신사고로 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병법책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손자는 자신이 쓴 손자병법을 갖고 강대국이 아닌 오나라라고 하는 벤처신흥국가에 가서 자신의 뜻을 펼침과 동시에 오나라를 강대국 반열에 올립니다.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새롭게 변해가는 새로운 시대에 당장 내 선택이 좀 어렵고 힘들고 남들이 볼 땐 화려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야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당장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들어가고, 대기업 들어가는 것이 출세가 아니란 것입니다.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손자가 만약에 중원의 명분이 있는 나라(강대국)에 갔다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여기서 손자에 대해서 이야기할 그런 기회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오늘 각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3부에서는 “부시와 손자병법”에 대해서 각론합니다.

 

태권도정보연구소 / 청호태권도장 / 신성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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